가난하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말할 것이다. '가난한데 왜 못 누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행복을 찾을 수는 있겠지. 하나 시간을 누리는 것은 행복과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며 자본이 없다는 것은 숨 쉴 때 빚을 지는 것과 같다.
내 시간을 나만을 위해 쓰려면 돈이 들어간다.
그 사실을 난 너무 늦게 알았다.
사실 모른 것은 아니다. 갓 성인이 되고 자취를 시작했을 때 느꼈었다.
매달 들어가는 방세, 식비, 전화비 등등. 숨 쉬고 멍하니 있는 시간에도 돈이 들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날 문득 숨이 막혔다. 내 존재 자체로 돈을 지불해야 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빚 없이 나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다만 공허했다. 누군가에게 선물도 줄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놀러 갈 수도 있었다.
재미를 느꼈으나 내 삶의 기쁨이 될 수는 없었다. 사실 돈을 벌어서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에 메여있었고 휴일은 재미를 찾아 애쓴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허했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쉴 수 없었다.
자본이 없었으니까. 물론 자본은 지금도 없다.
차이가 있다면 자본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것이겠지.
우리는 어릴 때 돈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행위를 지양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근데 그 돈이 우리를 넉넉하게 만들고 본인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는 걸 몰랐다.
그래. 그냥 자본사회에 자본이 없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거다.
바보같이 이걸 몰랐기에 주변에 하소연하고 싶었다. 힘들다고. 쉬고 싶다고. 날 알아달라고.
부모님은 그저 견디라고 했다. 세상은 본래 힘든 거라고. 견디는 거라고.
공허한데 버틸 것은 점점 늘어났다. 주변은 세상은 본래 그런 것이라 했다.
공격이 날아오는데 어차피 아프다고 피하는 법은커녕 막는 법도 없이 맨몸으로 버티라고 하는 기분.
배운 게 버티는 것이 전부라 힘겹게 버티는데 주변이 내게 기대오며 하소연했다.
나도 힘들어. 나 좀 도와줘. 나 좀 이해해줘. 나 진짜 필요한 게 있어.
상대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그 도움 요청을 모두 거부하지 않았다.
외롭고 공허한 가운데 날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모습에 내가 쓸모 있게 느껴졌으니까.
완벽한 자기기만이었다. 나를 위해 투자하고 자본을 만들 중요한 시기에 주변의 시선만 보며 날 놓았다.
무너져 더는 줄 수 없을 때까지 그들은 내가 대단하다 했다. 잘 될 거라고. 난 길도 찾지 못했었는데.
지금도 길은 찾지 못했다. 도리어 무너져 삶에 무성의 해졌을 때 진 빚에 눌려있다.
다른 게 있다면 가능성을 볼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자본 마이너스 삶으로 내 현재를 누릴 수 없다.
그러나 그게 미래에도 내 삶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내 바람은 미래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선택할 수 있는 삶이다.
하루 쉰다고 다음 달 납부할 금액을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삶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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