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오랜만에 들어온다. 꽤 오래 글을 쓰지 않은 것 같은데...
글은 쓰지 않았으나 나를 놓지 않았고 움직이는 것, 먹는 것도 신경 써왔다.
그 결과라 해야 할까. 현재 나는 꽤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퇴근하며 걷는 5000~6000 보도 산뜻하게 할 수 있는 체력도 생겼다.
물론 아직 부족하고 개선할 사항은 넘쳐난다.
그저 조급해하지 않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가끔은 어제의 나보다 못할 때도 많다. 피곤하거나 놀고 싶기도 하니까.
그래도 나를 놓지 않으려고 한다. 놓지 않는 한 발전할 테니까.
요즘 나는 성장이 하고 싶다. 동시에 나를 놓고 싶다.
힘들고 지루한 순간. 부정적 언어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순간.
손에 쥔 칼을 내 목에 찌르는 상상을 하게 된다. 건강한 사람들은 이 말에 기겁하겠지.
그러나 이게 내 상황이고 현실이다. 생글생글 웃고 나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동시에 죽고 싶다.
이 사실을 적고 싶었다. 인정하고 놔두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니까.
이랬던 나조차 잊고 행복해지고 싶다.
예전에는 행복하지 않아서 죽고 싶었다. 행복이 없어서 삶은 어두웠고 괴로웠으니까.
행복하지 않은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내가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질문하는 나 자신에게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설득조차 못했다.
살고 싶은데 죽을 이유가 더 타당해 보였다. 난 구차하게 의무를 만들어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짐이 된 죄인이니까. 쓸데없이 착실해서 오빠를 못난 사람 취급되게 만드는 트러블 메이커니까.
부모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려 노력했고 가족들을 한없이 챙겼다.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가정이 평화로울지 고민했다.
모든 순간, 모든 나날 나는 없었고 열심히 노력했으나 항상 공허했다.
그냥 전제가 잘못됐던 거다. 사람으로 태어나 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잘 살기 위해서는 행복해야 한다. 살아가는데 행복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던 거다.
난 내가 왜 행복하지 않을까 불행할게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먼저 했어야 할 것이 나를 알아가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난 다 크고 나서야 알았다. 다 놓고 무너져 있을 때 온전히 나를 바라봐 준 1명의 사람 덕에.
내가 행복하지 않고 죽고 싶다면 그건 진짜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다.
나는 '나'를 가지고 싶었다. 나의 일상. 나의 사람. 나의 물건. 나의 마음.
이 단순한 사실 1개를 몰라서 몇십 년을 공허하게 살았다.
마음은 변했으나 생각하는 버릇은 그대로 남아 내 일상에 우울이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내가 할 노력은 그 그림자에 빠지더라도 바로 나와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내 마음과 다르게 세상은 내게 시간과 노동,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가끔 그 사실에 지친다. 과거였다면 그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나쁜 말을 안 듣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러면서 나를 알고 싶어 주변 내 평판에 흔들렸을 거고 우울의 늪에서 헐떡거렸겠지.
이미 해봐서 아는데 또 들어가기 싫다. 그래서 말하고 있다. '내 일상을 방해하지 마'
과거 나의 노력은 타인의 만족을 위해, 주변의 시선에 맞추기 위한 의무였다.
해야만 했다. 남들처럼 튀지 않고 다른 이에게 말 안 듣고 부모님이 날 잘 키웠다 증명해야 했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나의 노력은 온전히 나를 위해 집중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만족감을 느끼는지. 내가 뭘 꾸준히 해야 사람다움을 유지하는지.
가끔 주변과 부딪친다. 내가 오죽하면 부탁을 하겠냐. 왜 부탁을 들어주지 않냐는 말도 듣고 눈치도 받는다.
그럼 난 불편해진다. 내가 이기적인 것일까 고민도 하게 된다. 사람들은 평가를 쉽게 한다.
신기한 건 내가 나에게 집중하고 알아가면 갈수록 타인의 평가를 흘려듣게 된다.
그렇게 나를 뒤흔들던 타인들의 언어가 내게 고이지 않는다.
해본 적 없는 나를 사랑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해본 적이 없기에 초반에 많이 헤맸다. 그저 응원하면 되나? 믿는다는 건 강압 아닌가?
결과물도 하찮은데 이런 나를 좋다고 받아줘야 할까? 불신과 의심 못 미더움까지 나인데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길을 찾은 것은 우연이었다.
오랜 시간 활동한 아이돌과 그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들을 보며 알게 됐다.
아이돌이 처음 데뷔하면 10대가 대부분이다. 2차 성징이 아직 덜된 경우도 있고 모든 게 미숙했다.
그런 아이돌이 낸 앨범의 숫자가 커지며 아이돌 멤버들은 성장하고 있었고 한없이 빛나고 있었다.
성장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였다. 실수와 부상도 많았고 내가 아는 한 그들은 비난도 많이 받아왔다.
그런데 팬들은 그 과정에 함께 울고 웃고 실수에도 응원하고 절대적인 애정을 보여줬다.
멤버들은 서로를 의지하는 동시에 팬들에게 늘 고마워하고 보답하고자 노력했다.
그래, 덕질이구나. 어떻게 날 사랑해야 할지 그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
난 이제야 행복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다. 부족하다. 난 그런 나를 덕질하기로 했다.
힘든 시간 견뎌내고 행복을 찾겠다고 일어난 부분에서 팬이 된 거다.
넘어지고 아플 때도 난 나에게 관대하게 응원하며 동시에 걱정을 할 거다.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도망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나아가겠지.
회피만 해오던 지금보다 훨씬 아플 거다. 알지만 찾으려 한다. 난 내 삶에서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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